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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끄적거림

불면증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가 보다.

새벽에 이딴 거나 끄적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질문은 곤란했다.

"왜 갑자기 그런걸 궁금해 하는 겐가?"

나는 재생지로 제본된 책 페이지를 클립으로 고정시키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기름을 좀 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째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남자들은 그걸 그렇게 신경쓰지 않나요?"

언제나 이렇게 뜬금이 없단 말이다. 그녀는 손에 작은 양장책을 들고 넘기고 있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정사에 대하여" 
무슨 내용을 읽었을까. 내 기억은 어느 부분에 가서 멎었다. 왜 그녀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그녀의 저 천연덕스러운 랠리에 응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건 마치 내가 성희롱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군."

"헤에. 선생님도 그런 수치심을 느끼나요?"

후우- 하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책상너머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조교 박인로양이 라운드그로스스퀘어 안경을 고쳐쓰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말이지. 이런 느긋한 봄비나 추적거리는 5월에 어울리는 책이다.

"이리 와보게."

토끼같은 얼굴로 그녀가 내자리로 왔다. 토끼는 겁이많아서 죽어버린다고 하지 않았나? 

"손가락을 내밀어보게"

가느다란 손가락. 손톱의 반월이 참으로 깜찍하다.

"손가락을 넣어봐."

그리고 나는 입술을 오므려 내밀었다. 웃지마시게, 어떤 표정일지는 내가 더 잘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녀가 부끄럽지 않게 눈도 감아주었다. 이만하면 꽤 신사가 아닌가.
잠시나마, 그녀의 주저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가락을 넣을 것이다. 그녀의 호기심은, 어떤 도덕관념이나, 양심이라든가, 하는 것을 뛰어넘은 것이니까. 그런 그녀 덕택에 내가 이런 망측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

입술끝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밀고 들어온다. 최대한 입술을 오므리면서 힘껏 빨아들인다. 손가락은, 잔뜩 움츠린 입술의 저항을 비집고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멈춘다.
내 입속은 따뜻할까. 잠시 동안의 정적. 박인로양이, 책상너머에서 도끼눈을 뜨고 있을 것이 느껴진다. 그 짧은 정적 동안 내 입속으로 느껴지는 약간은 짭쪼름한 맛과 손끝의 격동. 분명 이런 느낌일까. 몸속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인 다는 것은. 자신의 몸속에 또다른 울림을 느끼는 것은.
그 짧은 교감이 끝나고, 손가락이 다시 빠져나간다. 이번에는, 순순히 보내준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떳다.

"잘 알겠나?"

호업양은 고개를 뒤로 젖히곤 천장을 바라 보았다. 나는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녀가 그 느낌이 어떤 것인가를 약간이나마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니까. 그래서 일까. 그녀는 내 타액이 묻은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속으로 다시 집어 넣는 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이.... 그.... 뭐랄까.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나는 박인로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의 성희롱일기따위를 적고 있진 않겠지.

"그치만. 잘 알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호업양은 모직 주름치마에 손을 슥슥 닦고는 다시 책장정리를 시작했다. 나도 그런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오후 2시. 슬슬 식곤증이 몰려올 때 였다.



기실 그녀가 궁금했던 것은 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by 17호 | 2009/07/11 07:02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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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달걀폭풍 at 2009/07/11 09:44
─이 글을 쓰는 작가도 궁금했던 것이다─
Commented by 호워프 at 2009/07/12 01:3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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